돈은 언제 발명 되었는가?
돈이 언제 어디서 처음 발명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황소, 조개껍질, 돌, 소금, 향신료, 식료품 등 온갖 종류의 물건이 지불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그중에서도 황소는 최초의 교환 수단이 자 계산 단위였었다. 그래서 돈과 관련된
단어의 어원 중에는 황소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스페인어로 돈을 pecunia(페쿠니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가축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pecus(페쿠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도 독일어로 금전적인 문제가 있다는 표현을 할 때 pekuniar(페쿠니에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한편 황소의 수를 셀 때는 머릿수로 세는데, 라틴어로 머리는 caput(카푸트)라고 한다.
영어 단어 captital(자본)은 이 caput에서 유래된 것이다. 요금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fee도
가축이라는 의미의 게르만어 fihu(피후)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갖 종류의 물건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해오던 인류는 금속을 가공하는 법을 익힌 후로 좀 더
전문화한 방법에 눈을 떴다. 최초의 금속 동전을 주조한 것이다. 현존하는 유물을 기준으로 하면,
최초의 동전은 기원전 600년, 현재 터키 지역에 있었던 라디아 왕국의 크로이소스왕
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과 관련된 유물을 관찰하다 보면 6세기 중국의 생활상을 짐작 할 수도 있다. 일찍이 동전을
지불수단으로 도입한 중국인들은 서로 물품을 교환하는 물물교환 형태에서 점차 도구를 본떠서
만든 물건을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물도구를 교환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훨씬
간단했기 때문이다. 도구를 본떠서 만든 물건은 차츰 동전의 형태를 갖춰가게 된다.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지는 화폐
종이를 화폐로 사용한 시점은 이로부터 한참 후인 20세기였다. 종이를 거래 수단으로 보급시키자는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는 듯했다. 별 탈 없이 보편적인 거래 수단으로 정착되었지만,
종이를 돈으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에는 엄청난 파괴력이 숨겨져 있었다.
10세기 중국 교역 상인들이 거래 수단으로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동전을 주조할 금속이 부족했고 종이는 사용하기가 편리했다. 이전에는 상인들과 교역을
할 때 물건을 담보로 맡겼지만, 이제 물건의 가치를 명시한 종이만 있으면 간단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 종이가 발전하여 현재의 고유한 화폐가 된 것이다.
이 화폐는 물건의 실질가치를 완전히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와는
많이 달랐다. 종이에 명시된 가치가 언제 어디서나 보장되는, 놀라울 정도로 가치가 안정적인
형태의 화폐였다. 이 화폐는 구매력이 감소할 수 없었다.
수천 년 후 이 아이디어는 다시 논의되었다. 사람들은 상품화폐를 사용하면 인플레이션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러한 화폐 체계를 도입하면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여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중국의 화폐도 순식간에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졌다. 지폐의 위력을 알아챈 국가가
은행권 발행을 독점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13세기 중국에서는 지폐가 유일한 합법적 통화로
자리 잡았다. 중국인들은 지폐를 화폐 역사의 청사진이라 여겼기에 이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중국인들은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국가에서 구 권을 폐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권을 계속 발행했던 것이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화폐를 마구 찍어내듯이 말이다. 1380년에는 지폐 한 장이 동전
1000개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535년에는 지폐 한 장당 동전 0.28개로 가치가
급락하며 최초의 지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물론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은 국가였다.
앞으로도 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물론 최악의 인플레이션은 지폐가 유발하는
인플레이션이다. 금속, 물품, 혹은 기타 실물을 기본으로 하는 화폐와 달리 지폐는 별도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마음껏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화폐는 등장과 동시에 국가에 의해 본래의 화폐 가치를 상실하고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