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국가 경제가 겪게 되는 인플레이션 유발형 디레버리징은 가계가 지급 문제를 겪을 때 벌어지는
일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가계와 달리, 국가는 시중에 존재하는 통화량과
통화 가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국가가 국제수지의 불균형을 관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되며, 전 세계에 단일
통화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통화가치가 바뀌면 해당 국가의 재화와 서비스 가격이
달라지는데, 자국민과 외국인이 체감하는 정도가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정책 입안자는 보통 처음에는 외환 보유고를 쏟아붓거나 통화 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통화 평가 절하는 절대 있을 수 없다며 외화 자본을 통제하는 등의 방법들을 동원하며 환율 방어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속이 불가능한 방식이기에 결국에는 환율 방어전을 중단하고 환율을 시장에
맡겨 버리는 게 일반적 입니다.
정책 입안자가 환율을 시장에 맡길 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1)초기에 통화 가치가 실질환율 기준으로 평균 30% 정도 크게 하락합니다.
(2)통화 가치 하락은 단기 금리 인상만으로는 상쇄되지 않기에 첫해에 통화를 보유하여 발생하는
손실이 평균적으로 30%로 상당하다.
(3)하락 폭이 큰 나머지 정책 입안자가 하락세를 완화하려고 외환 보유고를 계속해서 쏟아붓는다.
평균적으로 한 해 10% 정도의 외환 보유고를 추가로 소비한 후에야 환율 방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평가 절하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정책 입안자가 얼마나 잘 대응하는가에 따라 조정 기간에 경제가
견뎌야 할 고통의 크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평가 절하는 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고,
인플레이션형 불황을 유발하게 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인플레이션형 불황이 발생하게 되면 예외 없이 평가절하가 수입 물가를 올리게 되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인플레이션을 급등시키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평가 절하를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단행하면, 평가절하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기대 심리를 낳아 자본 유출과 투기가
조장되며 국제수지의 불균형이 점차 확대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인플레이션 심리가 강화되는 결과까지 초래됩니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대량으로 찍더라도 자본 유출을 충분히 상쇄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돈을
찍어낼수록 해당 통화를 내다 파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본 도피가 악화 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률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여 투자자들은 자금을 빼내려 하고, 한때 보물처럼 여겨졌던
자산은 쓸모가 없는 휴지 조각처럼 취급해 버리게 됩니다. 과도한 매수세가 금세 과도한 매도세로
전환하면서 자산 가격은 폭락하며 불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산과 부채의 불일치는 특히 외화 부채에서 두드러지게 됩니다. 자국 통화가 하락하면 외화로
빚을 진 채무자들은 자국 통화 기준으로 늘어난 부채 부담을 직면하게 됩니다. 채무자는 대게
자국 통화를 팔아 빚을 갚고, 환 혜지를 하며, 외화로 예금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모두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 압력을 가중 시킬 뿐입니다.
통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품 가격이 높아지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게 됩니다.
이 불황 국면 동안 모든 양상이 완벽한 상황에서 끔찍한 상황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부채, 경제, 정치, 통화 등 다양한 문제가 서로 엉키며 불황을 악화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분식 회계나 부정부패 등 눈에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투자 환경에 문제가 많아지면서 외국 자본이 이전처럼 유입이 되지 않고, 국내 투자자들도
자금을 국외로 반출하려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을 바닥을 찍는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바닥을 찍을 때에는 버블 국면과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가 됩니다. 버블기 동안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지만, 저점에 이르면
시장을 빠져나가게 됩니다.
자산과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공포에 떨며 시장에서 빠져나가기 정신이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시장 진입을 계획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매도자는 남아도는데 매수자는 부족한 상황이 되면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커지고, 결국 가격은
하락하게 됩니다. 경기 하강이 자기 강화적으로,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하강 국면은
인플레이션 유발형 디레버리징에서 가장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됩니다.